맨위로가기

김정숙 (1917년 12월)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정숙은 1917년 12월 24일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이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조선어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다는 설이 있으며, 1930년대 초반부터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여 김일성을 도왔다. 1940년 김일성과 결혼 후 소련으로 건너가 김정일을 낳았고, 해방 후 북한에서 조선민주여성동맹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49년 3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북한에서는 '백두 여장군'으로 칭송받으며 개인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성주의자 - 박정애
    박정애는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 북한 건국에 기여한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조선민주여성동맹 초대 위원장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북한 정권 수립에 핵심 역할을 했으나 숙청과 복귀를 겪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성주의자 - 정칠성
    정칠성은 일제강점기 기생으로 3·1 운동에 참여하여 사회운동에 투신, 여성 계몽과 사회 부조리 개선을 주장하며 신간회와 근우회에서 항일 의식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저술가 - 홍명희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정치인으로, 장편소설 《임꺽정》으로 유명하며, 독립운동 참여, 언론 및 교육계 활동 후 해방 후 남북협상 참여, 월북하여 북한에서 요직을 역임하며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저술가 - 박문원 (미술가)
    박문원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미술사학자로, 유화 작품과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반영한 작품을 남겼으며 미술사 저술과 고구려 벽화 평론을 발표하고 조선미술동맹 등에서 활동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원수 배우자 - 홍일천
    홍일천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 김정일과의 결혼과 이혼 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김형직사범대학 학장을 지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원수 배우자 - 리설주
    리설주는 김정은의 부인으로,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으로 추정되며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고, 2012년 공식적으로 소개된 후 2018년부터 '여사' 칭호를 사용하며 활발한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숙 (1917년 12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김정숙
이름김정숙
한자金正淑
로마자 표기Kim Jong-suk
출생1917년 12월 24일
출생지일제강점기 함경북도 회령시 회령면 오산동
사망1949년 9월 22일
사망지평양
통칭여사
정치 및 활동
사상공산주의
활동항일빨치산
소속조선인민혁명군
배우자김일성
직책국무원 내각 예하 중앙여맹위원장
임기1948년 9월 9일 ~ 1948년 9월 16일
주석김두봉
총리김일성
국가북조선
거주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직업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 정치가
정당조선로동당
군 복무조선인민혁명군 / 소련군 88극동정찰려단
복무 기간1936년 4월 ~ 1945년 8월
계급소련군 지상군 상위
근무조선인민혁명군 / 소련군 88극동정찰려단 교도대
지휘조선인민혁명군 / 소련군 88극동정찰려단 교도대
참전제2차 세계 대전
현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퍼스트레이디
가족 관계
배우자김일성
자녀아들 김정일, 김만일, 딸 김경희
부모김중산(부), 오씨(모)
형제언니 1명, 누이동생 1명, 남동생 3명
친인척시아버지 김형직, 시어머니 강반석, 시숙부 김형권, 시숙부 김형록, 시조부모 김보현, 리보익, 시외조부모 강돈욱, 위돈신
기타
종교무종교
수상공화국영웅

2. 생애

김정숙은 소년선봉대, 조선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김일성 휘하의 조선인민군 신갈파부대의 부대장으로서 일본에 대항하여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다. 1945년 남편 김일성을 따라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였으며, 1949년에 사망했다.

김정숙


16세에 유격대에 들어간 김정숙은 거기서 김일성을 만나 결혼했다. 1941년 2월 16일 소련에서 김정일을 출산했다. 조선으로 귀국한 후에는 "조선민주여성동맹(현재의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의 초대 위원장으로 추천받았으나 사양하였다.

2. 1. 출생과 성장 배경

김정숙은 1917년 12월 24일 함경북도 회령군 오산동(지금의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동)의 가난한 농가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1]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설에 따르면 조선어를 읽고 쓰지 못했다고 한다.[1]

출생 및 성장 배경


2. 2. 일제 강점기 활동

1917년 12월 24일,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 오산동(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회령시 동명동)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2년 봄,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만주 (당시 중화민국)와 소련 사이를 방랑하였다.

김정숙은 어린 나이부터 항일 무장 투쟁과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연도사건
1931년9월 12일소년선봉대에 가입
1932년7월 25일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팔로군 부대)에 가입(만 16세)
1932년11월8구 공청위원회 위원에 당선
1934년가을연길현(현 연길시) 공청위원회로 이동
1935년3월삼도만 유격구 능지영(연길시 근교)에서 김일성을 만남
1935년9월 18일조선인민혁명군에 참가
1937년1월중국 공산당에 가입



1940년 가을, 김일성과 결혼 후 소련으로 넘어가 1941년 2월 16일 소비에트 연방 뱌츠코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백두산 밀영이라고 주장함)에서 첫째 아들 김정일을 출산하였다.

2. 2. 1. 항일 무장 투쟁과 공산주의 운동

1932년 일제는 김정숙의 아버지와 가족, 친척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아버지와 오빠를 살해하고, 재산과 토지를 모두 몰수했다. 김정숙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1935년 만 17세 때 동북항일연군(소련군 극동사령부 휘하 부대) 빨치산 취사병이 되었다. 1935년 9월 만주 안투 현(安圖縣)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항일혁명활동을 전개하다가, 이듬해인 1936년 4월부터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서 친위전사로 복무하며 <시난차 전투>, <서강 전투>, <무송현성 전투> 등에 참가했다.[1] 1937년 1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1] 1937년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 김일성 작전사령관(중대장급)이 지휘하던 동북항일혁명군에 입단해 위생 및 취사 업무에 복무하면서 여군사령관(소대장급)을 역임했다.[1] 김일성은 김정숙의 재주를 인정해 경호원으로 임명했고, 동북항일혁명군 신갈파부대의 부대장으로 임명했다.[1] 김정숙은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면서 삐라와 게릴라전을 통해 민중들을 항일독립운동에 참가하도록 호소하였고,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전투의 승리에 기여하였다.[1] 1937년1938년 김일성으로부터 임무를 받고 장백현 도천리와 국내의 신파(김정숙군), 신흥, 풍산(김형권군), 허천, 낭림, 단천, 이원, 홍원, 북청일대 등 여러 지역에서 당 및 혁명조직과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여 항일혁명투쟁을 전개했다.[1]

연도사건
1931년9월 12일소년선봉대에 가입
1932년7월 25일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팔로군 부대)에 가입(만 나이 16세)
1932년11월8구 공청위원회 위원에 당선
1934년가을연길현(현 연길시) 공청위원회로 이동
1935년3월삼도만 유격구 능지영(연길시 근교)에서 김일성을 만남
1935년9월 18일조선인민혁명군에 참가
1937년1월중국 공산당에 가입
1940년가을김일성과 결혼


2. 2. 2. 김일성과의 결혼

1940년 가을, 김정숙은 김일성과 결혼하였다.[1] 그해 10월, 김일성과 함께 소련으로 넘어갔다. 1941년 2월 16일, 소비에트 연방 뱌츠코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백두산 밀영이라고 주장함)에서 첫째 아들 김유라(김정일)를 낳았고,[1] 1944년에는 둘째 아들 김슈라(김만일)를 낳았다.

2. 3. 해방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남편 김일성과 함께 평양으로 귀환했고, 이듬 해인 1946년 5월에 딸 김경희를 낳았다. 1947년 여름, 둘째 아들 김만일이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사망하였다. 1948년 3월 연극《백두산》시연회를 참관하였고, 같은 해 9월 김일성이 내각 수상이 된 후, 중앙여맹위원장 사업에 추천받았으나 사양하였다.

1945년 11월 소련군 점령하의 조선반도 북부(현재 북한)로 귀환하였다.[1] 1949년 9월 22일 3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북한의 공식적인 견해는 심장마비가 사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치태반(자궁외임신)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암살설도 있다.[1]

2. 4. 사망

1949년 9월 22일 새벽 2시 40분에 아이를 낳다가 사산하고 극심한 하혈에 의한 쇼크사로 사망하였다. 향년 33세였다.[2] 북한의 공식적인 견해는 심장마비가 사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치태반(자궁외임신)이라는 설이 있으며, 암살설도 제기되었다.[2]

3. 사후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소재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그림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전시된 김정숙의 흉상


김정숙은 해방 후 공식적인 직책을 맡은 적은 없으나, 사후 장군으로 추존되어 '백두여장군', '김정숙 여장군님' 등의 존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묘지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김정숙의 항일 투쟁과 해방 이후의 새 조국 건설 사업에 남긴 업적이 높다며 《3대장군》 중 한 명으로 받들었다. 양강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과 김정숙읍이 신설되었다. 함경북도 회령시와 양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 등지에 동상이 있고, 혁명열사릉에 흉상이 있으며, 조선인민군 해군간부를 양성하는 초급 대학 중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해군대학이 있다. 또한 김정일은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에서 평양산원을 지었다.

4. 평가

김정숙은 김일성의 항일 운동을 아내로서 지원한 점은 인정받지만, 북한에서 주장하는 여러 업적에 대해서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학자들 대부분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1] 반면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에 기반한 개인숭배의 일환으로 김정숙을 국모로 존숭하며, "백두산의 여장군", "항일의 여성 영웅", "3대 영웅" 등 다양한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1972년 9월 21일에는 북한 정부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3]

4. 1. 북한

1945년 해방 이후 남편 김일성을 따라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였으며, 1949년에 병사했다.[3] 김정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집권하면서 장군으로 추증되어 '백두여장군'으로도 불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그의 항일 투쟁과 해방 이후의 새 조국 건설 사업에 남긴 업적이 높다며《3대장군》중 한명으로 받들었다. 양강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과 김정숙읍이 신설되었고, 함경북도 회령시와 양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 등지에 동상이 있다. 대성산혁명열사릉에 흉상이 있으며, 조선인민군 해군간부를 양성하는 초급 대학 중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해군대학이 있다. 또한 김정일은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에서 평양산원을 지었다.

조선으로 귀국한 후, 북한에 설치된 "조선민주여성동맹(현재의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의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1972년 9월 21일에는 북한 정부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주체사상에 기반한 개인숭배의 결과,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과 함께, 국모로서 존숭받고 있다. 또한, “백두산의 여장군”, “조선혁명에서 조선민족을 위해 지울 수 없는 혁명적 업적을 세운 김일성의 친위전사”, “항일의 여성 영웅”, “탁월한 정치 활동가”, “위대한 혁명의 어머니는 영원히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조선 현대사에서 칭송받는 3대 위인”, “3대 장군”, “3대 영웅 중 한 사람” 등 다양한 칭호로 불리고 있다.

4. 2. 대한민국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김정숙김일성의 항일 운동을 아내로서 묵묵히 지원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북한의 선전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여러 업적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부정하고 있다.[1]

5.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친정아버지김중산? ~ 1932년
친정어머니오씨? ~ 1942년?
언니김정순[4]
형부김낙현
남동생김용순
남동생김기준
남동생김기송
여동생김영숙
시할아버지김보현
시할머니리보익
시아버지김형직
시어머니강반석
남편김일성
아들김정일
며느리성혜림, 고용희, 홍일천, 김영숙, 김옥
손녀김혜경
손자김정남
손녀김설송
손녀김춘송1975년
손자김정철
손자김정은
손녀김여정
아들김만일어려서 사망
김경희당 중앙위원, 경공업부장 역임
사위장성택
손녀장금송1976년 ~ 2006년


6. 같이 보기

참조

[1] 뉴스 KBS 특별기획 김정일 3부작 '김정일의 모든 것을 찾아서'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1-12-22
[2] 뉴스 비화 김일성과 북한 : 전 북한군 사단 정치위원 여정(呂政) 수기 <4> 김성애는 시종비서 여군 출신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0-05-13
[3] 뉴스 북한의 열사릉, 그 상징과 폭력 :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http://www.prometheu[...] 프로메테우스 2006-08-13
[4] 자료 북측 자료에 의하면 김정숙이 10세 때, 집안의 빚 때문에 지주집 머슴과 첩으로 빼앗겼다고 한다.
[5] 뉴스 [뉴스 따라잡기] 김정일이 곁에 둔 여성들 http://news.kbs.co.k[...] KBS
[6] 웹사이트 김정일~가계도 http://andocu.tisto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